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치즈키 요시오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[[1947년]] [[5월 2일]], [[시즈오카현]] [[시즈오카시]] [[시미즈구]]에서 태어났다. 시즈오카현립 시미즈히가시 고등학교를 거쳐서 [[주오대학]] 법학부를 졸업한다. 이후 시미즈시 시의원, 시즈오카현 현의원을 역임하다가 1996년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[[신진당]]의 추천을 얻어 무소속으로 나와 시즈오카현 제4구에서 당선됐다. 당선 후 [[자유민주당(일본)|자유민주당]]에 입당했다. 제2차 [[모리 요시로]] 내각의 외무대신 정무관, 제1차 [[고이즈미 준이치로]] 개조 내각의 환경대신 정무관, 제1차 [[아베 신조]] 내각의 국토교통부대신을 역임했다. 2008년부터는 중의원 국토교통위원장에 취임을 했으나 자민당이 망한 2009년의 [[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]]에서 [[민주당(일본 1998년)|민주당]]의 다무라 겐지에게 패했고, 비례대표 중복 입후보도 했으나 구제도 못 받게 되었다. 하지만 2011년 1월, 도카이 비례대표였던 [[오무라 히데아키]]가 [[아이치현]] 지사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중의원을 사직하면서 모치즈키가 그 자리를 이어받는다. 그렇게 2012년 [[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]]에서 이전에 패했던 민주당의 다무라 겐지를 꺾고 6선한다. 2014년 9월 제2차 아베 개조 내각에서 환경대신 겸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(원자력 방재)에 임명되어서 첫 입각했다. 같은 해 [[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]]에서는 입각 후에 보도된 정치 자금 논란이 있었음에도 다무라 겐지를 꺾었다. 같은 달에 출범한 제3차 아베 내각에서도 그대로 직을 유지했다. 이후 2017년의 [[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]]에서 8선을 하지만 건강 문제로 2019년 가을부터 요양을 했다. 당시 4월 시즈오카시 시장 선거에서 자민당 후보를 응원하러 나오긴 했지만, 당시에 질병으로 입원과 퇴원을 번복했다고 알려져 있다. 결국 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같은 해 12월 19일 7시 5 분, 간기능부전 증세로 본인의 고향 [[시즈오카현]] [[시즈오카시]] [[시미즈구]] 자택에서 사망했다. 향년 72세. 참고로 제2차 아베 내각 관료 중 첫 사망자이다. 사후에 욱일대훈장을 수여받았다. 자민당의 [[기시다 후미오]] 정무조사회장은 기자회견에서 "오랫동안 행동을 같이한 동료 파벌의 사무 총장으로, 저를 지지해 준 정치 동지이자 둘도 없는 존재였다. 슬픈 심정이다. 높은 뜻을 제대로 이어 받아 노력해 공적에 보답하고 싶다"고 말했다. 또한 19일 열린 기시다파 회의에 참석한 20여명의 국회의원이 묵념을 했다. [[스가 요시히데]] 관방 장관은 19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"모치즈키 요시오 의원은 환경대신으로서 제염 토양 등의 중간저장시설 건설 등 [[후쿠시마현]] 부흥과 지구 온난화 대책에 매우 열심히 노력하셨다. 갑작스런 사망 소식에 놀라 유감스럽다. 삼가 명복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. 내가 당선 동기이며, 그런 의미에서 매우 괴롭다"고 말했다. 그의 사후 열린 [[2020년 일본 국회의원 보궐선거]]에서 자민당 후보 후카자와 요이치가 당선되면서 그의 지역구를 지켜 냈다. 기시다가 [[2020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]]에 출마를 선언한 9월 5일 시즈오카시를 찾아 모치즈키의 묘소를 참배해 이번 총재 선거에서의 분투를 다짐했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